여름 내내 목에 걸었던 은목걸이가 갑자기 뚝 끊겼습니다. 그때부터였던 것 같습니다. 재수가 옴 붙기 시작한 게. 문손잡이가 고장나 화장실에 갇혀도, 안경을 쓰려다 한 쪽 다리가 거짓말처럼 똑 부러져도, 프린트가 갑자기 안 나와서(토너 상태 창에 토너 양은 충분한데도 불구하고) 독서회에 필요한 학습지를 인쇄하지 못해도, 안경테를 맞추려고 방문한 단골 안경점의 서버가 내가 방문한 시간에 다운되어도, 웃고 넘기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내가 없는 동안 괜찮았던 우리집 큰 고양이 홍삼이가 내가 여행에서 돌아오고 나서 심한 변비에 걸리자 힘이 빠졌습니다. 나쁜 운수의 정점은 서울에서 반가운 이들과 점심 약속이 있어 광역버스를 탈 때 일어났습니다. 어제까지 아무 문제 없던 모바일 교통카드가 갑자기 인식되지 않았습니다. NFC를 껐다 켜보기도 하고 이리저리 조작하느라 진땀 흘리는 동안 버스가 출발하지 못하자 기사와 승객들이 눈총을 보내기 시작했습니다. 다음에 탈게요. 버스를 내리고 나자 무력감이 쓰나미처럼 몰려왔습니다. 끊어지고 부러지고 고장나는 일들이 이 짧은 기간동안 쉬지 않고 나에게만 일어나다니, 온 우주가 날 농락하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뭘 해도 안 된다는 무력감과 허무감이 족쇄처럼 양쪽 발목에 하나씩 채워져, 아침에 눈을 떠도 오후까지 멍하고 식욕과 의욕도 떨어져 기본 루틴을 지키기도 어렵고 무엇보다 웃음을 잃었습니다. 청명한 가을 하늘 아래 감옥이 따로 없었지요.
이럴 때 원인을 찾아 자책하는 일은 무의미합니다. 그냥 살다보면 좋은 날이 있듯이 나쁜 날도 있다고 받아들여야 하지요. 하지만 셰익스피어가 ‘햄릿’에서 ‘슬픔은 한 명의 정찰병처럼 오지 않고, 대대 병력처럼 떼로 온다.(When sorrows come, they come not single spies, but in battalions.)’고 했듯이 불행의 대대가 다 지나갈 때까지 평상심을 잃지 않고 기다리는 일은 무척 힘듭니다. 이제 끝났나 싶으면 소대 하나가 기다렸다는 듯이 지나가고 그럼 또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기력에 항복해 버리곤 하니까요.
지금쯤 제 불운의 대대는 다 지나갔을까요? 잘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희망 한 조각을 우연히 얻었습니다. 실물 카드를 안 들고 다니는 습관이 배어 도서관 가는 버스를 또 핸드폰만 달랑 들고 탔습니다. 집에서 자가 테스트를 통해 NFC와 SIM 기능이 정상이라는 걸 확인했기에 일말의 희망은 있었지요. 하지만 역시 인식되지 않았습니다. 기사님에게 다음 정류장에서 내리겠다고 했더니 어디까지 가냐고 묻더니 그냥 타고 가라는 겁니다. 진담인지 농담인지 “오늘 버스비는 다음에 버스 탈 때 내세요.”라는 그 말이 참 고마웠습니다. 유예를 허락받은 후 빈자리에 앉아 찬찬히 모바일 교통카드 앱을 열어 문제를 해결할 방법을 찾았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띠릭” 인식에 성공했습니다. 버스에서 내릴 땐 잃었던 미소 한 조각이 입가에 걸려 있었지요. 이 작은 성공 하나로 불운의 구름이 다 걷힌 건 아니지만 버스 기사님이 베푼 친절 하나가 철옹성 같은 불운의 트랙에서 빠져나갈 틈을 만든 건 분명했습니다. 그리고 중요한 교훈도 하나 얻었지요. ‘일이 계속 꼬이고 풀리지 않아서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더라도 집 밖으로 나가라. 엉킨 운의 흐름은 혼자서 절대로 풀 수 없다. 모임과 약속을 만들고 장을 보고 산책해라. 귀인은 집 밖에 있다.’
K People Focus 차경숙 칼럼니스트 (ueber35@naver.com)
(함께성장인문학연구원 수석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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