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위스의 공동주택에서 생활하는 외국인이 가장 당황하는 일 가운데 하나는 마음대로 세탁기를 사용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평일에 밀린 빨래를 일요일에 하려고 공동세탁실을 찾았다가 문이 잠겨 있거나, 세탁기 옆에 게시된 이용시간표를 보고 발길을 돌리는 일도 생긴다.
스위스에서 일요일은 단순한 휴일이 아니라 이웃의 평온과 휴식을 함께 지켜야 하는 날로 인식된다. 세탁기와 건조기의 진동, 탈수 과정에서 발생하는 소음이 위층과 아래층, 옆집으로 전달될 수 있기 때문이다. 진공청소기 사용이나 벽에 못을 박는 일, 잔디를 깎는 작업도 일요일에는 자제해야 할 행동으로 여겨진다.
다만 “스위스에서는 일요일에 세탁기를 돌리면 불법”이라는 말은 정확하지 않다. 스위스 전역에 모든 세탁을 일률적으로 금지하는 단일 규정이 있는 것은 아니다. 거주 지역의 소음 규정과 임대계약, 공동주택의 관리규약에 따라 허용 범위가 달라진다. 스위스 연방주택청의 생활 안내서도 일요일과 공휴일에는 소음을 피하고, 공동세탁실의 이용시간은 임대계약이나 세탁실에 게시된 별도 규칙을 따라야 한다고 설명한다.
스위스의 오래된 공동주택에는 각 가구가 지정된 요일과 시간에만 세탁실을 사용하는 ‘세탁 일정표’가 남아 있는 경우가 많다. 거주자는 자신의 이름이나 가구 번호가 배정된 시간에 세탁기와 건조기를 사용하고, 사용이 끝나면 필터와 세제함, 바닥을 깨끗하게 정리한다. 공동시설을 독점하지 않고 다음 사람에게 온전하게 넘겨주는 것도 생활예절의 일부다.
이러한 규칙은 과거 세탁기의 소음과 진동이 지금보다 컸던 시절에 만들어졌다. 건물의 방음 성능도 충분하지 않아 세탁기 작동이 이웃의 휴식을 방해할 가능성이 컸다. 세탁기 성능과 주거환경이 개선되면서 일요일 세탁을 전면 제한하는 규칙은 시대에 맞지 않는다는 의견도 나온다. 실제로 일부 주택 전문가들은 객관적인 이유 없이 지나치게 사생활을 제한하는 관리규칙은 정당성을 인정받기 어렵다고 본다.
그러나 법적 논쟁과 실제 공동생활은 다른 문제다. 최신 세탁기가 조용하다는 이유로 건물의 규칙을 무시하면 이웃과 갈등을 일으킬 수 있다. 세탁실이 침실과 가까운 구조이거나 탈수 진동이 건물 전체로 전달된다면 작은 소음도 휴식을 방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지역과 건물에 따라 밤 10시부터 오전 7시까지, 정오부터 오후 1시 또는 2시까지를 휴식시간으로 정하기도 한다. 일요일과 공휴일에는 평일보다 더욱 조용한 생활을 요구하는 곳도 있다.
변기욱 여행전문가는 “스위스의 일요일 세탁 제한은 세탁 자체를 부정적으로 보는 문화가 아니라, 개인의 편의보다 이웃의 휴식권을 함께 고려하는 공동생활의 약속”이라고 설명한다. 이어 “숙소나 장기 임대주택에 도착하면 세탁기를 먼저 작동하기보다 임대계약서와 세탁실 게시문, 이용시간표를 확인하고, 내용이 불분명하면 집주인이나 관리인에게 문의하는 것이 안전하다”고 조언한다.
여행자가 호텔이나 숙박공유시설을 이용할 때도 같은 주의가 필요하다. 객실에 세탁기가 있다고 해서 언제든 사용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특히 밤늦은 시간과 일요일에는 탈수와 건조 기능을 피하고, 공용 세탁실에서는 다른 이용자의 예약시간을 침범하지 않아야 한다. 급하게 세탁해야 한다면 관리인이나 이웃에게 먼저 양해를 구하는 것이 좋다.
스위스의 조용한 일요일은 개인의 행동을 무조건 통제하기 위한 시간이 아니다. 누구나 한 주에 하루만큼은 생활소음에서 벗어나 편안히 쉴 수 있어야 한다는 사회적 합의에 가깝다. 세탁기 한 번 돌리는 일에도 이웃의 시간을 생각하는 문화는 자유로운 공동생활이 서로에 대한 배려와 책임 위에서 유지된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