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이 과학기술 강국으로 성장했지만 노벨과학상 수상자를 배출하지 못한 현실을 진단하고, 기초과학의 경쟁력을 높이기 위한 해법을 모색하는 학술대회가 열렸다. 사단법인 한국노벨과학포럼은 31일 온라인으로 ‘노벨과학상 0명, 왜 아직인가?’를 주제로 제1차 한국노벨과학포럼 학술대회를 개최했다. 이번 학술대회는 한국인 노벨과학상 배출을 위한 연구 환경과 인재 양성 체계, 정부의 과학기술 정책을 종합적으로 점검하기 위해 마련됐다.
학술대회는 ▲노벨과학상 수상 구조 진단 ▲과학인재 양성 전략 ▲국가 정책의 역할 등 세 가지 분야로 나눠 진행됐다. 과학적 발견을 이끄는 연구 환경부터 인공지능(AI) 시대의 연구 패러다임 변화, 한·일 정부의 과학기술 정책 비교, 장기 기초연구 투자 필요성까지 다양한 주제가 논의됐다.
단기 성과 중심 연구에서 벗어나야
이번 학술대회에서 주목할 부분은 노벨과학상 수상 여부를 단순한 국가적 성과 경쟁이 아니라 과학 연구 생태계 전반의 문제로 접근했다는 점이다. 환영사를 맡은 이상엽 KAIST 특훈교수는 노벨상 자체가 우리 과학의 궁극적인 목표가 돼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중요한 문제를 정의하고 세계 최초의 연구와 새로운 학문·기술을 개척하며 인류의 미래를 바꾸는 연구를 지속하는 것이 본질이라는 설명이다. 이를 위해서는 단기적인 성과에 연연하지 않고 창의적이고 도전적인 연구를 장기간 지원하는 연구문화와 제도가 정착돼야 한다. 특히 젊은 과학자들이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독창적인 아이디어를 펼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는 점도 제시됐다. 이는 연구개발(R&D) 투자 규모뿐 아니라 연구비 지원 방식과 평가체계, 연구자의 자율성 등 과학기술 정책 전반을 돌아봐야 한다는 문제의식으로 이어진다.

AI 시대, 과학인재 양성 체계도 바뀌어야
과학기술 인재를 어떻게 발굴하고 성장시킬 것인지도 주요 의제로 다뤄졌다. 박원수 한국노벨과학포럼 사무총장은 심성·사회성·지적 능력을 통합한 인재상을 제시했다. 정현도 중부대 교수는 디지털 역량에서 과학적 발견으로 이어지는 인재 성장 전략을, 국준원 경희대 의과대학 연구원은 AI for Science 시대의 연구 패러다임 전환과 과학기술 인재 양성 전략을 각각 발표했다. AI가 연구 데이터 분석과 가설 탐색, 실험 설계 등 과학 연구의 여러 과정에 활용되는 시대에는 디지털 기술을 다루는 능력뿐 아니라 새로운 질문을 제기하고 독창적인 연구 문제를 설정하는 역량이 중요해진다. 따라서 과학인재 양성도 정해진 지식을 습득하고 평가받는 방식에서 벗어나 탐구와 발견, 융합적 사고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발전해야 한다는 과제를 안고 있다.
정부 정책과 장기 기초연구 투자가 관건
국가 차원의 연구개발 정책과 투자 구조도 집중적으로 다뤄졌다. 이영환 고려대 융합연구원 AI 디지털혁신연구센터 특임교수는 노벨과학상을 향한 한국과 일본 정부의 국제적 노력을 비교하는 주제를 발표했다. 김정은 한국노벨과학포럼 전문위원은 노벨과학상 수상으로 이어지는 조건을 바탕으로 한국 연구체계를 진단하고 개선 방향을 제시했다. 한성원 해양수산과학기술진흥원 책임연구원은 ‘돈이 되지 않는 연구에 국가가 투자해야 하는 이유’를 주제로 기초연구의 공공성과 장기 투자 필요성을 다뤘다. 기초과학은 연구 성과가 단기간에 산업적 가치나 경제적 이익으로 연결되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장기적으로 축적된 지식과 원천기술은 새로운 산업을 탄생시키고 기존 산업의 경쟁력을 바꾸는 토대가 된다. 이 때문에 단기적인 사업화 가능성만으로 연구의 가치를 판단하기보다 미래 기술의 기반을 형성하는 연구에 안정적으로 투자할 수 있는 정책적 장치가 필요하다.
그래핀부터 광유전학까지…기초과학과 융합연구 조명
이번 학술대회에서는 노벨과학상 수상 구조와 국가 교역 구조의 장기적 변화, 최근 30년간 노벨화학상 분석, 광유전학을 통한 생물학적 치유와 인간관계 회복에 관한 인문과학적 고찰, 그래핀 기술과 산업 등 다양한 주제도 발표됐다.이는 노벨과학상 문제를 특정 학문 분야에 국한하지 않고 물리·화학·생명과학을 비롯한 기초과학과 융합연구, 산업적 응용까지 폭넓게 살펴보려는 취지로 풀이된다. 특히 원천기술과 융합연구의 중요성이 커지는 상황에서 연구 분야 간 장벽을 낮추고 새로운 지식과 기술이 탄생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일도 중요한 과제로 떠오르고 있다.
한국노벨과학포럼은 이번 학술대회를 통해
한국 과학기술의 성과와 한계를 진단하고, 노벨과학상 배출을 위한 연구체계와 정책 방향을 논의했다. 결국 한국 과학의 도약은 노벨상 수상이라는 결과를 목표로 내세우는 것만으로 이뤄지지 않는다. 연구자가 장기간 한 분야를 파고들 수 있는 환경, 실패를 용인하는 연구문화, 창의적 인재를 길러내는 교육체계, 미래를 내다보는 국가의 기초연구 투자가 함께 뒷받침돼야 한다. 노벨과학상 수상자 배출은 이러한 생태계가 제대로 작동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하나의 지표다. 한국이 추격형 과학기술 국가를 넘어 세계 과학의 새로운 방향을 제시하는 국가로 도약하기 위해서는 연구의 본질과 국가 연구개발 시스템을 함께 바꾸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이번 제1차 한국노벨과학포럼 학술대회는 노벨과학상 수상자 부재라는 현상을 넘어 한국 과학기술 연구체계의 구조적 과제를 진단하고, 기초과학의 새로운 도약을 위한 사회적 논의를 시작했다는 데 의미가 있다. 특히 연구문화와 과학인재 양성, 국가 연구개발 정책을 하나의 연결된 과제로 조명했다는 점에서 향후 과학기술 정책의 방향을 모색하는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앞으로 이러한 논의가 일회성 학술행사에 그치지 않고 장기 기초연구 지원 확대와 연구 자율성 강화, 창의적 인재 육성을 위한 구체적인 정책 제언으로 이어질 수 있을지가 중요한 과제다. 노벨과학상은 단기간에 만들어지는 성과가 아니다. 한국이 세계 과학의 흐름을 따라가는 국가에서 새로운 지식과 발견을 선도하는 국가로 도약하기 위해서는 연구자와 학계, 산업계, 정부가 함께 지속 가능한 과학연구 생태계를 구축해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