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며칠 전 일이다. 종합검진을 받기 위해 병원에 갔다. 그런데 예전과는 매우 다른 모습이다. 접수하는 장소에 커다란 기계? 몇 개가 사람 대신 서 있었다. 화면을 보니 접수부터 결제까지 할 수 있는 시스템의 기계였다. 그래서일까 큰 병원이어서 많은 사람들이 드나드는 숫자에 비해 직원의 숫자는 예전처럼 많지 않아 보였다.
지금의 현실은 이처럼 우리가 움직이는 동선에 따라 맞춤형 시스템이 다양한 모습으로 눈앞에 서 있다. 최근 들어서 다양한 매체를 통해 접하는 가장 핫이슈인 AI의 도입으로 생긴 낯설지만, 피할 수 없고, 피해서도 안 되는 익숙해져야 할 현상이다.
그렇다면 AI의 폭발적인 확대에 따라 우리가 경험해야 할 세상은 어떠한 것일까? 세계 최대의 전자, 정보기술 전시회에는 인공지능 휴머노이드가 만들어져 나오고, 티브이를 통해서 보는 축구하는 로봇, 고난도 춤을 추는 로봇, 하물며 자율주행 자동차가 진즉 출시되어 운영되고 있다. 그렇다면 인간의 노동을 대체하면서 노동의 종말을 고하는 이러한 현실 앞에 인간이 육체적으로 일할 수 있는 노동의 앞날은 과연 어떠한 결과를 가져올까, 그리고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일련의 이러한 현상들이 눈앞에 닥쳐오는 이때, 30여 년 전 제러미 리프킨의 저서 《노동의 종말(원제 The End of Work 》을 다시 한번 펼쳐보았다. 그는 “노동자 없는 세계로 열린 길이 시야에 들어오고 있다. 그 길이 우리를 기술 천국의 유토피아로 인도할 것인지, 무서운 지옥으로 인도할 것인지는 아무도 모른다. 노동의 종말은 문명화에 사형 선고를 내릴 수도, 새로운 사회 변혁과 인간 정신 재탄생의 신호일 수도 있다. 미래는 우리의 손에 달려 있다” 했다. 그렇다, 그의 말대로 ‘노동의 종말’이 현실로 다가오는 듯하지만, 한편으로는 지금과는 다른 사회와 더불어 그동안 겪어보지 못한 인간의 새로운 정신이 탄생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이에 대한 답은 우리에게 있다.
사회학적인 시선으로 보면 휴머노이드 AI와 휴머노이드(humanoid) 등에 의해 인간의 미래를 우울하게 할 것이라는 비관론이 있다. 그 이유는 기업들의 혁신적인 기술 독점으로 막대한 이윤을 창출하면서 양극화된 사회가 되어 일자리 잃은 노동자들이 할 일이 없어 방황하게 된다고 한다.
한편으로는 AI와 휴머노이드 시대에는 유토피아와 디스토피아가 공존할 것이라는 전망이다. 그렇다면, 일자리가 없어진 불안한 미래가 도래할 수밖에 없다. 어쩜, 공존이 아닌 인간 사회의 커다란 변곡점이 되어 기존 질서를 무너뜨릴 수 있다. 한나 아렌트가 말한 ‘호모 라보란스(Homo Laborans, 노동하는 인간)라 했던 말이 생각난다.
이처럼 인간을 대체하는 기계가 생산성과 효율성을 독점하는 시대에 과연 인간의 가치는 어디서 찾을 수 있을까? 일을 많이 하고 빨리해야 하는 걸까? 결코, 그것은 아니다. 얼마나 공동체적인 연대감을 이루고 타인에 대한 공감과 그리고 내적인 삶의 의미를 찾아가는 능력이 바로 AI 시대에 할 수 있는 가장 인간적인 영역이 아닌가 싶다.
병원에서 검진이 끝나고 도심 속 의자 몇 개 있는 음식점에 들어가 앉았다. 주문하려고 직원을 부르려 하는데 저쪽에서 테이블 오더를 사용하라고 한다. 그때 앉은 테이블 한편에 자그마한 기계가 있었는데 그게 테이블 오더였다. 그 기계에서 주문하고 바로 카드 결제했다. 서너 시간 전, 병원에서 겪었던 일과 겹치면서 시대의 변화에 따른 환경을 생각하며 음식을 먹는 둥 마는 둥, 맛이 있는지 없는지 모르는 색다른 경험을 했다.
음식점 밖을 나와 집으로 가는 길, 점심 무렵이다. 빌딩 사이를 걷는데 남녀가 삼삼오오 모여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그럴 일이 없겠지만, 왠지 AI에 자리를 빼앗길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담배 연기에 피어오른 것 같았다. 그리고 “모든 부(wealth)의 근원은 노동”이라고 애덤 스미스가 했던 말, 지금 어떠한 문장으로 고쳐 써야 할까? 눈꺼풀에 물음표를 매단 채 집으로 향했다.
[홍영수]
시인. 문학평론가
제7회 매일신문 시니어 문학상
제3회 코스미안상 대상(칼럼)
제4회 한탄강문학상 대상
제7회 보령해변시인학교 금상
제6회 아산문학상 금상
제5회 순암 안정복 문학상
제6회 최충 문학상
시집 『흔적의 꽃』,『지구의 유언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