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책 한 권을 집어 들었습니다. 스즈키 유이의 <괴테는 모든 것을 말했다>입니다. 책장을 넘기다 눈길이 멈추는 대사를 만납니다.
“요즘 시대에 소설의 한 구절이나 하이쿠 시구, 정치가의 연설, 유행어 같은 게 명언이 되려면 사람들의 ‘신화력’이 회복되어야 해!”
소설 속 시카리 교수가 한 말인데, ‘신화력’’이라는 단어가 머릿속을 맴돕니다. 유명한 명언도, 오래된 고전의 시구도, 책 속에서 발견한 멋진 문장도 그것이 내 안에 와닿지 않는다면 검은 글씨에 불과하겠죠.
가슴을 뛰게 하고, 내 삶을 돌아보게 하고, 마침내 어떤 행동으로 이어질 때 비로소 그 문장은 살아 움직이기 시작합니다. 이 힘의 근원이 바로 ‘신화력’은 아닐까 싶었습니다.
지난 주말, 4박 5일로 제주도 가족여행을 다녀왔습니다. 여정 중 꼭 해보고 싶었던 건 성산 일출봉을 마주하는 것이었습니다.
오래전 거대한 폭발로 만들어진 성산일출봉. 한때 뜨겁게 끓어올랐을 마그마의 위용 대신, 이제는 풀이 자라고 있습니다. 지금은 다시 용암을 분출할 가능성이 거의 없는 분화구입니다.
그 풍경을 바라보다 문득 소설 속 ‘신화력’이라는 단어가 스칩니다. 40대 중반을 지나면서 부쩍 늘었다고 느낀 건 바로 무덤덤함입니다. 새로운 것을 마주해도 예전만큼 설레지 않고, 감동적인 문장을 읽어도 그저 좋은 말이네 하고 지나치기 쉽습니다.
스스로에게 질문 하나를 해봅니다.
‘내 안에 신화력이 남아 있을까. 식어버린 마그마, 풀떼기만 무성한 분화구 같진 않은건가.‘
신화에는 언제나 영웅이 등장합니다. 신화력의 회복이란 결국 내 삶의 영웅은 바로 나라는 점을 상기하는 거부터 시작하는건 아닐까요. 어쩌면 너무나 당연하지만 일상에 치이다 보면 잃어버리거나, 잊어버리기 쉬운 명제가 아닐까 싶습니다.
식어버린 마음이 어떻게 맞닿아 새로운 분출을 해낼 수 있을까요. 책의 번역가는 역자후기에 이렇게 말합니다.
“영원히 되풀이되는”이야기들 속에서 ‘그렇게 인용만 하지 말고 자신의 언어로 말하기’를 꿈꾸며.
우리 안의 신화력이 다시 깨어나기를 바랍니다. 자신의 삶으로 자신의 문장을 만들어갔으면 좋겠습니다. 우리 안의 마그마가 다시 뜨거워질 순간을 고대하면서 말이죠.




